변천과 연혁

영락교회 여전도회 변천 및 연혁

history
1. 1946년 8월 5일 주일약 30여명 회원이 모여 부인 전도회가 창립 조직되었는데 이것이 영락교회 여전도회의 시작이었다.
2. 1979년 2월 25일 그리스도의 복음을 해외에 전파하는 일에 전력을 다한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2부 여전도회가 발족되었다. 그리하여 1부 여전도회(만 46세이상)와 2부여전도회(만45세이하), 2개로 나뉘어 활동하게 되었다.
3. 1989년 복음 전파의 열정과 함께 좀 더 좁혀진 세대간의 공감대 속에서 효과적으로 활동하기를 바라며, 2부에서 분리되어 3부여전도회(만40세이하), 3개로 나뉘어 활동하게 되었다.
4. 1994년 1부 여전도회에서 만 61세이상은 제1부여전도회로, 만 51-60세는 제2여전도회로 분리하여 제2여전도회가 새로이 발족되었다. 따라서 과거 2부여전도회는 제3여전도회로, 과거 3부여전도회는 제 4여전도회로 명칭이 개칭되었다. 그리하여 제 1여전도회(만61세이상), 제 2여전도회(만51-60세), 제3여전도회(만41세-50세), 제4여전도회(만40세이하) 4개로 나뉘어 활동하게 되었다.    2016년 11월 부터 제 1여전도회는 (만 63세이상), 제 2여전도회는 (만 53세-62세),제 3여전도회(만 43세-52세) 제4여전도회는 (만 42세이하)로 나이 조정하였다.

따라서 현재 해외선교에 주력하고 있는 제 3여전도회의 모체는 1979년 해외선교에 목적을 두고 발족된 과거 2부여전도회이다.

81년도부터 지회로 나누어 활동하기 시작한 여전도회는 93년 19지회에서 20지회로 바뀌었고 94년부터 2010년까지 19지회, 2011년부터 18지회로 바뀌었다.

여전도회 연혁

1. 최초의 여전도회
1989년 2월 평양 널다리골(장대현교회)의 이신행 여신도를 중심으로 여전도회가 창립되었다.
2. 여전도회 서울 노회
1925년 승동교회에서 경기노회 여전도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으며 1966년 서울 노회로 개명하였다.(1908-1928년 사이 각 지방 연합회가 창립되면서 노회 단위 연합회가 조직되었다.)
3.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1928년 9월9일 대구 신정교회에서 전국11개 연합회 대표자들이 모여서 여전도회 전국연합회의 전신인 조선 예수교 장로회 부인 전도회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이루이시 초대회장)
4. 여전도회 주일의 유래
1936년 9월 본 교단 제 25회 총회가 광주 양림교회에서 회집 되었을 때 전국 여전도회에서 중국 산동성에 파송한 최초의 여선교사 김순호 전도사(1931년 파송)가 안식년으로 일시 귀국하여 본교단 총회 때 선교보고를 한바 총대들은 그의 선교 업적과 노고를 크게 치하하게 되었고 전국 여전도회 사업을 협조하고 격려하는 뜻으로 1937년부터 매년 1월 3째주일을 여전도회 주일로 정하여 선교의식을 고위시키는 예배를 드리게 되었다.
5. 영락교회 여전도회
1946년 8월 5째 주일에 부인전도회가 창립 조직되었는데 이것이 영락교회 여전도회의 시작이었다.

여전도회 역사

1885년 H.G언더우드 목사가 한국 최초의 선교사로 입국하면서 한국의 장로교회가 시작되었다.
그 후 여러 선교사등리 잇따라 입국하여 헌신적으로 복음 전도에 힘쓰던 중 마포삼열 선교사를 중심으로 순회 전도하며 배부한 전도자로 인해 예수를 믿게 된 이신행씨는 평양 널다리골 교회에 출석하게 되었고 1898년 동교회 여신도인 신반석, 김정선 제씨와 더불어 처음으로 여전도회를 조직하였다.
그 후 1828년 9월 9일 대구 신정교회에서 본 교단 총회에서 승인된 규칙에 따라 선교사 이루이시를 초대회장으로 하여 여전도회 전국연합회 전신인 조선 예수교 장로회 부인 전도회 창립총회를 개최하였고 당시 참가한 지방연합회는 모두 11연합회였다. 이렇게 발족된 여전도회는 일제시대, 6.25동란 등 민족의 수난기에도 와해되지 않고 복음전파, 민족의 독립, 교회의 재건을 위해서 힘을 모으며 투철한 선교의식과 민족의식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 확장에 힘써왔다. 현재 전국 연합회 산하에 62연합회, 약 3,800지회 130만 명의 회원에 이르고 있다.